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짙푸르던 포도 잎사귀도 이제 서서히 단풍이 든다. 더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포도를 따기 시작해 계절이 바뀌도록 수확을 했다. 저 포도를 언제 다 따나 싶을 정도로 열매가 풍성했는데 드디어 오늘 마지막 수확을 하는 것이다.
“톡”
마지막 포도송이를 땄다. 감회가 남다르다. 가뭄에 애태우고 폭염에 시달리고 태풍에 한숨짓고…. 포도나무와 우리 세 모녀는 지난 계절의 악조건 속에서도 열매를 잘 기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가을이 오기까지 우리가 함께 해낸 일을 생각하니 기적 같다. 더러 부실한 열매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한 나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포도상자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돌아서면서 자꾸만 뒤를 흘끔거린다. 무겁게 달고 있던 열매를 모두 내려놓은 나무. 이제 좀 홀가분할 텐데 나는 왜 찔끔 눈물이 나오는 걸까.
가을 포도나무에서 나는 어머니의 삶을 본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억압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신 어머니. 6·25 때는 동네를 가운데 두고 앞산에는 국군이, 뒷산에는 인민군이 진을 치고 맹렬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동네 앞 중앙선 철길 아래로 난 컴컴한 수로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굴 입구 쪽에서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대포가 터졌다. 젖먹이인 큰오빠가 놀라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 죽을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사람들이 엄마의 등을 밀다시피 했다. 사지로 나가는 어머니의 뒤를 아버지도 쫓아 나섰다. 그러자 할머니가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할머니는 매우 정이 많고 인자한 분이셨다. 그러나 자식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모성이 한순간 냉정한 판단을 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을 어찌 야속하다 할 수 있으랴.
아버지는 다시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젖먹이 어린것을 들춰 업고 발을 헛디뎌가며 허겁지겁 숨을 곳을 찾아 수로를 헤매었을 어머니….
전쟁이 끝나고도 어려운 시절은 오래갔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염려하고 수고하고 울고 웃으셨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일곱 남매 모두 짝지어 당신 품에서 떠나보냈지만 짐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셨다.
어느 자식은 넉넉지 못해서, 어느 자식은 건강이 나빠져서 또 어느 자식은 부부금실이 좋지 않으니 어느 한순간인들 마음 편할 날이 있었겠는가. 자식들의 삶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어머니는 이미 허약하고 병든 몸을 겨우 지탱하고 계셨다. 어미 우렁이가 되신 것이다.
우렁이 새끼는 먹이가 부족하면 어미의 살을 먹는다. 어미의 몸을 다 먹고 제법 자란 새끼 우렁이들 위로 껍데기만 남은 어미 우렁이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새끼 우렁이들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 시집가네.”
나는 한 마리 철없는 새끼 우렁이였다. 형편이 조금만 더 좋아진 뒤에 크게 효도해야지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어머니는 훨훨 하늘나라로 가버리셨다.
유난히도 기상조건이 혹독했던 올해. 그 어려움 속에서 열매들을 잘 길러 낸 포도나무도 머지않아 한 해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내년 사월에 다시 올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별은 아프다. 다시는 못 올 곳으로 떠난 어머니는 꿈에서라도 그 모습 한 번 보여주지 않으시니 내 그리움이 아직 하늘에 닿지 못했음인가.
어리석은 새끼 우렁이는 수확이 끝난 가을 포도나무 앞에 서 목이 멘다.
※필자 이수안: ‘향기로운포도원’대표.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회장을 역임했고, 30년째 포도농사를 지으며 집필 활동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