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할망 김숙희 씨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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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거나 멍청하거나
가을 불청객 태풍 소식이 휩쓸었던 초가을, 하우스 비닐만 좀 벗겨지고 괜찮다는 소식에 안심이 되었다. 한라봉 하우스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나무들과 배꼽이 튀어나온 초록색 열매가 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사진을 찍느라 숨을 참고 정지자세를 하자 모기떼들의 열렬한 환영인사로 온몸이 근질거린다.
“농약을 안 치니 모기가 이리 많아.”
이 농장의 주인 김숙희 씨(60)가 말했다. 농약 한 번 치면 편할 것을. 주변에선 미쳤다 또는 멍청하네 하며 욕을 해도 못 들은 척 농사를 지어왔단다.
“벌거지(벌레)를 다 손으로 잡으니. 말도 못해. 그렇게 살아완(살아왔지요). 영양제는 돈 주고 사오면 편하잖아. 근데 난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들어 써요.”

감태, 광어, 유채박, 막걸리 먹고 자라는 귤과 한라봉
비닐하우스 앞에 놓여있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통속엔 각각의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 친환경제제들이 가득하다.
“감태가 뭔지 알간? 바닷가에 가면 다시마 같은 해초가 있어. 감태에 바닷물을 한 차 실어와 당밀과 섞어 넣고 1년 동안 심어두면 노란물이 나와. 이게 힘이 없어 늘어지는 나무도 버쩍 서 있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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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 광어, 유채박 등을 재료로 식물에 주는 갖가지 친환경제제를 그는 직접 만든다. 광어로 만든 아미노산 액비는 우연히 만들기 시작했단다.
“한라봉 농사 시작 전이었어. 친구 오빠가 광어양식장을 하는데 여름이면 광어가 많이 죽어요. 그걸 가져다가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어놨어. 쓸 줄도 모르면서. 한라봉 하우스를 시작하면서 그 액비를 줬더니 잎이 이만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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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귀포에서 친환경농업 하는 사람 10명 중 6명은 광어를 재료로 한 아미노산 액비를 쓴다.
지난봄 뉴질랜드 오클랜드 근처에서 생명역동 농업을 하는 존 피어스 박사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 가오리를 발효해 쓰는 걸 보고 매우 반가웠다는 김숙희 씨.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들 코를 쥐어 잡고 그러는데,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좋은 거라. 우리집 온 느낌이었다니~”
막걸리도 담근다. 물론 나무에 줄 용도다.
어머니가 8월 추석이면 누룩을 만들어 놓고, 동짓달에 오메기떡(차조로 만든 제주 향토떡)이랑 섞어 막걸리를 담그는 것을 떠올려 만들기 시작했단다.

감태, 광어, 유채박 등을 재료로 김숙희 씨가 만드는 다양한 친환경제제와 막걸리
감태, 광어, 유채박 등을 재료로 김숙희 씨가 만드는 다양한 친환경제제와 막걸리

“가지가 가늘어지고 잎이 흐밀흐밀(흐물흐물)해질 때 희석해서 나무 밑에다 뿌려주면, 하룻밤이면 파래지게 올라가. 너무 많이 주면 죽지만 싱싱하고 힘이 나. 찌꺼기는 밭에다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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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살부터 밭에서 삶을 일구다
“서귀포서 태어나 스물넷에 시집와 내내 밀감 농사를 했어. 중매를 했는데 너무 좋은 사람이야. 형제도 많고. 중매쟁이가 집도 있고 밭도 있대. 40년 전에 밭 있음 부자였어. 근데 와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라. 남의 밭 임대하는 거였어. 남의 밭 김 매주고 그럼서 돈을 모았지.
그때 1천 원이면 아리랑 담배 한 갑, 새마을 담배는 두 갑 살 때야. 남편 밖에 나갈 때는 아리랑 담배 주머니에 넣어주고 집에서는 새마을 담배 피우게 하고. 그렇게 살았어. 그러다가 돈이 좀 모이니 내가 슈퍼를 했지. 근대화근연쇄점이라고. 9년간 장사해서 이 밭 1,600평을 샀어. 그게 32년 전이야. 가시나무를 다 베어내고 비닐하우스를 짓고 밀감나무를 심었어. 이 집도 내가 다 지어놘(지었어).”
그런데 유난히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마흔한 살에 쓰러졌다. 그때 그녀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떠났다.
“이 하우스 짓고 나선 옆 한 번 쳐다보질 않았지. 옷 한 벌 새로 사 입어본 적이 없어. 친구도 안 만나고 아무 데도 안 갔어. 오로지 밭에만 있어. 나무들 보면서 얘들아, 빨리 커서 나 편하게 해주라, 했지.”
이전에도 혼자였지만, 그 이후에도 늘 그렇게 혼자서 농사를 지었다. 나무가 그녀에겐 자식이자 삶 자체였고,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돈 안 드는 무농약 농업, 오히려 더 좋다
올해로 예순인 김숙희 씨의 하루는 새벽 5시 되기 전에 시작한다.
1,200평 하우스와 800평 노지 나무를 돌보고 소독하면 9시. 그때 간단히 식사하고 다시 하우스로 향한다. 옷이 흠뻑 젖도록 일을 하고 나면 점심때가 된다. 마음 맞는 지인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찜질방에 간다. 무릎관절을 수술한 후 찜질은 휴식이자 치유이기도 하다. 올레길에서 쉼터를 운영하는 딸 부부 대신 손녀를 놀이방에서 데려와 집으로 가면 그 이후엔 육아시간이다.

무농약 농사는 생산비도 절약되고 농산물과 농부도 건강하게 해준다.
무농약 농사는 생산비도 절약되고 농산물과 농부도 건강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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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번 치면 편하게 농사지을 수도 있는데 아픈 다리에 육아까지 책임지면서 무농약 농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농약 농사가 관행 농사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란다.
“힘들어도 (액비를) 만들어 놓으면 그게 돈이 어디야. 사서 쓰면 편하기야 하지. 하지만 한나절
좀 고생하면 몇 개월을 쓰는데…….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면 양동이로 퍼서 써보라고 주기도 하고.”
소독할 때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친환경농사가 힘도 들고 또 제값 받기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힘든 농사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더라도 생산비도 절약하고 농사짓는 사람이 건강할 수 있고 수확량도 많은 것이 바로 친환경농업이란다.
“예전엔 정말 어렵게 농사지었어요. 친환경으로 전환한 첫 해 농사지은 한라봉을 몽땅 버리기도했고, 일반농이랑 똑같은 대접을 받아 기운이 빠지기도 했지만, 이젠 아니에요.”
그녀의 한라봉과 밀감은 대부분 전국유통망을 가진 대형마트에서 수매한다. 그리고 입소문으로직거래와 생협 등으로도 납품하고 있다. 물론 가격 결정은 생산자가 주도한다.
“우리 밀감, 한라봉은 이 금액 아님 안 팔겠다 해요.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단가를 정해요. 이젠
신뢰가 쌓여서 그게 가능한 거죠.”

이순(耳順)의 나이에 들어선 김숙희 씨. 나무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고, 흙이 있어서 힘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삶이자 또한 미래이기도 한 농업이, 오늘도 어김없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사람이 보일까 말까 하는 어둠 속”새벽을 알리며.

글·사진/신수경